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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록

내가 진짜 싫어하는 당신을 통해 배운 점

by 하니덴버 2023.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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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 만난, 어른으로서 미성숙한 나의 담임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당시에는 사춘기 소녀에게 크나큰 시련이었지만, ‘이런 어른이 되진 말자’ 라는 ‘반대’ 모범사례를 제시해주셔서 내가 어른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뒤, 글로 적어내리며 곰곰히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어떤 점 때문에 그를 그렇게도 미워했을까.
 
담임을 만났을 때, 불행하게도 나는 1년간 이 반의 회장이었다. (1년제 회장제의 폐해)
더 불행하게도 다른 아이들보다 담임과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어야할 때가 많았다. 그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항상 부정적으로 해석했다. 학급 회장으로서 아이들의 의견을 대신 전달할 때, 자신의 지시에 조금이라도 위배되면 눈을 뒤집어까고 혼을 냈다.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면 버릇이 없다 예의가 없다 무시했다. 나는 그런 과민 반응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냥 다른 대안을 제시한 것 뿐인데, 이게 그렇게 버릇없고 혼나야하는 일인가? '
 
이렇게 비호감스러운 행동을 하면서도 담임은 어이없게도 사랑과 인기는 받고 싶었나보다. 담임과 같은 교과 선생님의 수업이 너무 재미있다고 우리끼리 하는 얘기를 엿듣고는 ‘자신의 수업은 재미가 없냐'며 비꼬며 '그 반으로 가라! ’ 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언제 담임의 수업이 별로라고 뒷담화를 했나? 열등감 느끼나? 17살의 어린 우리의 눈에도 그의 유치한 태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3월 학기 초부터 ‘버릇없는’ 회장으로 찍힌 뒤, 나는 새학기 학급환경을 도맡아 꾸며야했다.(이것도 이해가 잘 안된다). 아무튼 저녁 7시가 넘어서 까지 부회장 친구들과 남아서 해바라기 꽃도 만들어 꾸미고 글씨고 오려 붙이며 나름 예쁘게 꾸몄다. 이렇게 열심히 한 이유는 담임 선생님과 그래도 1년을 지내야 하니 , 모범생 17살 소녀 나름의 성의를 보인 것이다. 이 정도면 담임선생님께서 ‘수고했다!’ 칭찬해 주실 거라는 나름의 기대감도 있었다. 그런데, 환경게시판을 본 담임의 말은 뭐였냐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 아..여기다 붙이면 어떡해! 다 떼고 다시 붙여!
 
진짜 이 문장이 다였다. 늦게까지 남아 수고했다, 예쁘게 꾸몄다, 이런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 말을 듣자 헛웃음이 나며 내가 뭘 기대한건가 싶었다. 그리고 어떻게 수습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짜증나서 집으로 가버렸다. (나름의 반항)
 
하루는 내가 존경했던 중3 담임 선생님께 전화해서 전학 가고 싶다고 울기도 했다. 중3 때도 똑같이 회장이었지만 그 누구와도 잘 지내는 초 긍정 학생으로 기억하는 선생님께서는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하셨다. 이런 나를 보며, 엄마도 고민이 많으셨다. 이 당시에는 교사에게 촌지는 아니지만, 상품권 정도는 선물로 드리는 게 허용이 되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혹시 우리 애가 회장이 되었는데, 담임인 자신에게 인사를 오거나 선물을 하지 않아서 찍힌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을 하셨다. (이게 말이 되냐) 나는 엄마한테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아무것도 주지 말라고! 고래고래 진상을 부렸지만, 엄마는 기어코 인사를 하러 가셨고 선물과 함께 상품권도 드렸다. 그런데 엄마가 다녀간 뒤 담임이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그리고는 내 앞으로 엄마가 어렵게 드렸을 상품권 봉투가 휙 내던져졌다.
 
“ 야, 엄마 갖다드려. 누가 이런거를 받니 요새!! “
 
쪽팔림과 분노 올라왔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에 대한 원망도 있지만 담임에 대한 원망도 함께 올라왔다.
 
”그럼 도대체 나보고 어떡하라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나는 학교를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건데!!!”
 
소리치고 싶었다. 깽판도 놓고 싶었다. 교무실에서 돌아와 엉엉 우는 날보고 친구들이 다가왔지만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또 울며 엄마한테 또 괜히 화살을 돌렸다. 엄마도 무척 속상해하시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지금 기억나는 짤막한 사건들 이후 내 마음의 문은 닫혀버렸다. 그 뒤로는 담임과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내 기억 저장소에서 담임과의 추억은 저 강렬하고도 짜증이 가득한 세 컷으로 요악할 수 있다.
 
나는 배웠다.
 
무엇을?
 
‘앞으로 살면서 이 사람의 반대로만 하면 되겠다!’ 라는 것을.
 
말 할 때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말하기. 뚫린 입이라고 마구 내뱉지 말자.
타인의 말을 들을 때 열등감을 가지며 내 맘대로 비꼬아 해석하지 말자. 없어보인다.
어른이라도 실수가 있다면 인정하고 사과하자. 잘한 일도 꼭 인정하고 칭찬해주자.
감정이 폭발할 땐 한 템포 진정 시킨 뒤 대화하자. 감정 과잉 상태면 어떤 말을 내뱉을 지 모른다.
 
나에게 이렇게 큰 가르침을 주신 *** 선생님, 명예퇴직을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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