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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록

공교육 정상화의 날이 지나갔다.

by 하니덴버 2023.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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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AM5:30 

9월 4일,  생각보다 무난하게 지나간 하루였다. 

'파면, 해임' 을 외치며 징계를 외치던 이주호 장관은 어젯밤 징계는 없다며 꼬리를 내렸고 ,말이 많던 국회 앞 집회는 생각보다 멋지게 마무리가 되었다.

23년 현재. 서이초 선생님 이후로 신목초, 무녀초, 용인 고등학교 선생님까지. 더 최악으로 갈 수는 없겠다 싶은 지점까지 지금 와있는 느낌이다. 더 이상 가라앉을 곳이 없기에 앞으로 나아질 미래만이 있지 않을까. 이런 희망을 잠시 품고있는 나지만, 작년 한해 동안은 사직서를 품에 안고 '교직 탈출'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내가 코로나로 학교에나 나오지 못해 대신 와주신 시간강사분이 계셨다.그 날은 2시간 동안 숲체험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산책 도중 아이가 목이 마르다고 했고 선생님은 현재 물이 없기에 조금만 참았다가 학교에서 물을 마시라고 전달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는가? 하나도 없다. 물은 사전에 미리 챙겨가라고 수 차례 얘기했고, 알림장에도 적어놓았다. 물을 챙기지 않은건 본인이다. 본인의 아이가 목이 마르면 그 자리에서 물을 대령해드려야 하는건가. 코로나 시국이 아직 진행되고 있어 옆에 아이의 물을 나누어 먹게 하는 것도 힘든 상황이다. 고객님이 요구하셨으니, 숲에서 어떻게 옹달샘이라도 찾아드려야 했나?

결국 학부모는 교무실로 전화해 교감선생님께 선생님이 물을 안준 것에 대해 항의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옆반은 물을 준비해서 줬는데 준비를 안 한 교사를 나무랐다고 한다. (사실 확인을 해보니 아무도 따로 준비한 반은 없었다)

게다가 엄연히 아리수 정수기가 있음에도, 우리학교에 정수기가 없다고 국민신문고에 올리고 옆에 엄마들까지 시켜 교무실로 민원 전화를 넣었다고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민원은 다이렉트로 관리자분들에게 갔는데, 이걸 좋아해야 하는건가?

체육대회 날 사건은 다시 터졌다. 달리기만 하고 들어가는 짧은 행사였는데, 그 엄마가 사전에 동의없이 교문앞으로 찾아와 우리반에게 물을 돌리고 싶다고 하셨다. 교감선생님이

'이렇게 외부에서 절차없이 가져온 건 함부로 나누어 줄 수 없다. 아이들은 개인적으로 챙겨온 물을 마시거나 모자르면 아리수를 먹으면 된다.'  라고 거절하시자

“교감선생님 같으면 자기애한테 아리수 먹이겠어요????”

라고 교문 앞에서 소리를 치셨다고 한다. 그놈의 물타령. 아리수가 싫다면 그냥 집에서 두 병 챙겨주시면 될 일을… 난 할 말이 없었다. 이 물타령 사건이 벌어진건 4월, 느낌이 좋지 않았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부모들끼리 사이가 안좋아져서 아이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학교폭력 사안이 생겼다. 학교 폭력은 학교 내 외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작년에 학원에서 배를 한 대 친 사건으로 학교폭력으로 신고를 한 것이다. 

이런걸로 신고한다고? 진짜다. 신고했다. 그리고 학교폭력으로 신고한 가해자를 엿먹이기 위해 보복 신고는 일상다반사. 한건의 학폭이 접수되면 뒤에 줄줄이 보복성 2-3개 학폭 신고가 들어왔고 우리 반이 그렇게 얽혔다. 

가장 고생하시는건 학폭담당 선생님. 이런 일로 선생님께 고통을 드리는 것 같아 정말 죄송했다. 학부모들은 담당선생님께 역시나 소리를 열심히 질러댔고, 관리자 나오라며 불러내 면담까지 진행했다. "미안하다" 한 마디면 도덕적으로 끝맺어도 될 일로  4명의 선생님과 관리자가 마음을 조리고 2-3달 동안 시달려야 했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에  따로 아이를 불러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회의실로 안내한 적이 있다. 학습권 침해라고 화낼까봐 쉬는 시간에  쓰고 오라고 나름 배려한 것이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나에게 어떻게 진술서를 부모의 사전 동의 없이 쓰게하냐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가 진술서 작성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아픈거 아니냐며 나에게 다그쳤다. 학교폭력 사안 접수 후 절차상 진행되는 일이라고 설명시켜도 부모님들은 '우리 애' 만을 감싸고 돌며 행여나 상처가 되지 않을까 전정긍긍하셨다. 학교 폭력을 접수할 때 이미 이런 절차가 있음을 안내했고 동의하신거 아닌가요? 그리고 내가 여름방학에 자기들끼리 카톡으로 욕을 한 것을 어떻게 말릴 수 있나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예쁜말만 사용하라고 1학기 내내 지도했었는데 여기서 제가 더 어떻게 하나요?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은건 부모님들 본인들이신데, 왜 학교에 엄한 화풀이를 하나요? 내가 이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있었던 사소한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나요? 따져 묻고 싶은 말이 와르르 마음속에 쌓였지만 어느 하나 입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나는 힘이 없는 교사였으니까. 

 

무력감을 느끼며 하루하루 버티던 가을, 툭하면 나에게 자살 암시 문자를 보내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어머니가 있었다. 행여나 잘못될까봐  교육복지센터와 연결시켜 심리 상담을 받도록 기회를 제공해드렸다. 하지만 물가에 말을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먹는 것 까지는 해줄 수 없었다. 어머니는 물을 드시지 않았다. 아이는 불안감에 종종 공격행동이 나와 한시간 내내 아이가 나를 때리려는 것을 제지해야 했고,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몸으로 막았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를 보내지 않아 , 사회복무요원이 몇 번이나 집으로 찾아갔다. 아이가 제 시간에 등교를 하지 않으면 가슴이 쿵 내려앉고 전화기를 붙잡았다. 혹여라도 무서운 사건이 일어나면, 학교는 대체 무얼했냐, 담임은 무얼 했냐 소리가 나오겠지. 제가 뭘 안했습니까? 여기서 더 어떻게 합니까? 저는 가르치는 사람이지 심리상담센터가 아닙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나는 점점 무력해져갔다. 진짜로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내가 진위여부를 조사하는 경찰도 아니고 판결을 하는 판사도 아니었다. 아이들이 살아갈 때 필요한 올바른 상식과 지식을 ,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져야할 덕목을 가르치는 교사일 뿐이었다. 애써 웃어보이려고 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났다.인간으로서 더이상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런데 서이초 선생님이 일을 발단으로 모래알 같던 교사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모두가 나처럼 무력해지고 위기에 놓여있단 사실을 알게되었고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나의 절친한 동료가, 나의 후배가, 나의 존경하는 선배님이 모두 무너질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냥 나 혼자 살자고 탈출을 꿈 꾼게 부끄러워졌다. 선생님들의 용기있는 행동에, 나도 도망가기보다는 작은 점으로 이 자리에 남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고 싶어졌다. 

 

9월 4일, 우리는 달라졌고 앞으로 더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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